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해외 축구유학 성공과 실패 리포트

기사승인 2015.08.14  16:16:50

공유
default_news_ad1

- 비행기 타고간 천재들 남몰래 울며 돌아온다

[일요신문] 최근 ‘리틀 메시’ 이승우 선수에 대한 유럽 스카우트 시장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해외 축구 유학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현재 해외 축구 유학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망주는 바르셀로나의 백승호(18), 이승우(17), 장결희(16)와 발렌시아의 이강인(14) 등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축구 유학이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미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로 수많은 유망주들이 스타를 꿈꾸며 해외로 떠났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해외 유학 프로젝트를 통해 남태희(23), 지동원(23), 손흥민(22) 등을 키워냈다. 하지만 해외 유학이 반드시 장밋빛 결과로 연결되진 않았다. 한때는 천재라 불리며 원대한 꿈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다가 현지적응에 실패해 소리 소문 없이 돌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축구계의 로또로 떠오르고 있는 해외 축구유학의 성공과 실패기를 따라가 봤다.  

해외 유학파 유망주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AFC U-16 일본전에서 이승우가 골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맨왼쪽은 장결희. 사진제공=아시아축구연맹


2002년은 ‘월드컵’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온 나라가 4강 신화의 감동에 젖어 축구 광풍이 불었고 미래의 스타를 꿈꾸며 해외 유학길에 오르는 청소년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해외 축구 유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남미 축구 열풍의 영향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부류와 전통적인 유럽을 택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또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던 시기라 개인적으로 사설업체와 연결해 유학을 떠나는 형태가 많았다.

초등학생이었던 허 아무개 씨(22)도 그렇게 브라질 축구 유학을 떠났다. 허 씨는 “축구 전문 유학원도 없는 시절이라 부모님과 같이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 대충 클럽만 알아보고 떠났다. 프로 축구단에서 운영하는 클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축구 교실과 같은 곳이었다”며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른 채 브라질로 가기 때문에 유명 클럽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축구선수로 성공하고 싶어 노력했지만 결국 8년 만에 귀국해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클럽 입단이 확정되지 않은 남미 축구 유학은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명 구단에서 운영하는 클럽 유소년팀의 경우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으로 바늘구멍인 프로세계에 들어갈 확률이 그나마 높지만, 사설 축구교실의 경우 말 그대로 ‘학원’일 뿐 선수들의 미래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 즉 정보의 부재로 헛발질만 하고 귀국한다는 것이다.

브라질과 한국의 축구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선수들의 브라질 축구 유학 프로그램을 8년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조남윤 톱시드스포츠 사장은 “브라질에선 강요하지 않는다. 선수들을 자유롭게 놔둔다. 훈련에선 좁은 공간에서 펼치는 기술 등 세밀한 축구를 가르친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개인기가 나온다. 이렇게 자유롭게 배우고 돌아오면 다시 억압적인 한국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아직도 국내 지도자들 사이에서 해외 유학파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운동을 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선·후배와의 마찰이 생기는 등 팀워크를 해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축구 문화에 대한 차이가 큰데, 힘을 아껴 효과적으로 뛰라는 브라질과 달리 국내에서는 공격수도 무조건 뛰어야 하는데 유학파들은 그런 ‘강요’를 잘 따라가지 못해 낙오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지 않은 채 유학을 떠날 경우 귀국해서도 인정을 잘 안 해주거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박주영 선수

남미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수많은 선수 가운데 이름을 알린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의 이호(30·울산 현대)와 박주영(29) 등이 있다. 이호는 지난 2001년 브라질로 건너가 2년간 유학한 뒤 2003년 귀국, 2006년 월드컵에서 수비수로 맹활약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박주영은 포항 구단에서 지원을 해준 경우로 1년 남짓 브라질에서 유학을 했다. 
 
하지만 한때 ‘신동’으로 불리며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은 대부분 잊혔다. 그 가운데 축구황제 펠레가 인정한 선수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던 임규혁(30)과 ‘삼바축구 유학 1호’였던 서성철(30)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01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브라질로 유학을 떠났던 임규혁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명문 클럽 산토스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처음에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미래가 창창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에이전트와의 마찰, 부상 등의 이유로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현재 임규혁은 한국에서 자신의 경험을 밑바탕 삼아 유소년 축구교실 ‘메이트 인터내셔널’을 운영하고 있다.

1995년 축구 유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절 브라질로 떠나 ‘삼바축구 유학 1호’라는 별칭이 붙었던 서성철은 현지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브라질 프로 2부 리그에서 뛰다가 2006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K리그에서도 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남미 유학파의 경우 축구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 때문에 실패사례가 많은 반면 유럽의 경우는 제도적인 문제 때문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유학파들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개인적으로 유학을 떠난 경우와 대한축구협회가 실시한 우수선수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사례가 있다. 

발렌시아에 입단한 이강인.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02년 프랑스의 FC 메스에 5명(1기)을 입단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포르투갈, 브라질, 잉글랜드, 독일 등에서 총 29명의 유망주들이 선진 축구를 경험할 수 있게끔 했다. 앞서 남미로 떠난 해외 축구 유학생들과 달리 출발 조건부터 달랐기에 기대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의 유학 프로그램도 순탄치는 않았다. 여기에는 FIFA의 애매모호한 유학 연령 기준도 한몫했다. FIFA는 노동력 착취 가능성을 우려해 부모를 동반하지 않는 18세 미만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규정 때문에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 ‘라 마시아’ 소속의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는 당분간 공식 경기뿐만 아니라 컵대회 등 비공인 대회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1기 유학생들의 경우 FIFA 규정으로 프랑스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공식경기에 출장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뒤늦게 협상을 벌여 2기 3명, 3기 3명까지 프랑스에서 유학을 실시했다. ‘최악의 실패’라 불리는 4기 유학생들 역시 브라질, 포르투갈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해 실전 감각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FIFA와 일부 유럽 국가의 엄격한 유학 규정 때문에 축구협회도 한때 난감한 입장에 처했었다. 축구협회 한 관계자는 “협회에서 주관해 해외 유학을 보낼 경우 일정 연령별 이상은 그 나라 국적이 아니면 등록이 까다롭다. 등록이 안 되면 국제대회에 뛰지 못한다. 이런 이유 등으로 협회주관 유럽 유학 프로그램은 중단됐다”라고 밝혔다.  

자연스레 결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해 벌써 축구계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승부조작에 연루돼 팬들에게 충격을 준 인물도 있다. 1기 유학생으로 프랑스에 다녀온 어경준(28)이 장본인이다. 

어경준은 FC 메스 유소년팀에서 2군, 1군으로 차례로 승격되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07-2008 시즌 리그에서 한 경기를 뛰는 데 그쳤고 결국 2008년 K리그 성남 FC로 임대됐다. 임대기간이 끝난 뒤엔 한국으로 돌아와 FC 서울에 둥지를 틀었는데 주전 경쟁에서 밀려 시즌 내내 두 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부진한 성적표를 거뒀다. 방황하던 어경준은 2011년 승부조작 사건까지 연루돼 팀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물론 악조건 속에서 거둔 결실도 있었다. 1기 이용래(28·안산 경찰청), 3기 조영철(25·카타르 SC), 5기 남태희(23·레퀴야 SC)와 지동원(23·FC 아우크스부르크), 6기 손흥민(22·TSV 바이엘 04 레버쿠젠)이 주인공. 이들은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축구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손흥민은 대표팀의 막내지만 뛰어난 기량을 뽐내며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에이스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후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유학 프로그램은 국내 프로구단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중단되었다. 

한편 개인적으로 유럽으로 떠난 유학생들의 성적표는 현재 ‘평가 보류’ 상태다. 일단 1기생(2000년대 초반 유학생)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유럽은 아니지만 호주로 유학을 떠났던 기성용(26·스완지 시티 AFC) 외에는 성공했다고 평할 인물이 없다. 대신 너무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지내다 방황하거나 중도 포기한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부상, 병역문제, 인종차별, 의사소통 불가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넘기 힘든 산이었다. 

‘리틀 프리미어리거’로 불리던 이산(30), 세계적인 축구스타 루카스 포돌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던 권집(31), 아시아인 최초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한 정인성(28)이 위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중 이산은 축구 유망주 사관학교로 유명한 웨스트햄, 풀럼, 셰필드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가장 큰 기대를 받았었다. 국내에 그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송되면서 큰 인기를 끌어 항공사 CF 모델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높은 프리미어리그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산 선수의 경우 수비력이 약한 15세이하팀의 경우 골을 기록하기가 쉬웠으나 본격적인 1군을 바라보는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는 뛸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뒤 본인의 출중한 실력보다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서 일종의 ‘거품’으로 과대포장된 것이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도 나왔다.   

권집 역시 유학 생활을 했던 독일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와 2003년 수원삼성블루윙즈로 K리그 데뷔를 했다. 하지만 7년의 선수 생활 중 6개 팀을 오갈 만큼 불안한 행보를 보이더니 2011년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져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됐다. 정인성은 스페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해야 했는데 현재는 홍명보축구교실의 선수 육성반에서 코디네이션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유럽 유학파에 섣부르게 ‘실패’의 낙인을 찍을 필요는 없다. 뛰어난 실력과 탄탄한 준비 끝에 해외 유학을 떠나 급성장하고 있는 2세대 유망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초로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에 입단해 화제를 모았던 김우홍(20·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B), 새로운 팀에 이적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김영규(20·레알 아빌레스), 앞서 소개했던 바르셀로나 FC의 백승호(18), 이승우(17), 장결희(16) 등 이루 셀 수도 없다. 

이들은 축구협회의 육성시스템 혜택 없이 그들만의 소신과 열정, 그리고 일부 축구재단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어우러져 만든 명품 성공사례다. 실력이 있는 선수가 유학을 가서 더 크게 성공하는 것과, 유학을 가서 실력을 쌓는 경우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앞서의 실패 사례들이 그 해답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스포츠 조기 유학의 현실 
 
가족 전체가 물 건너가 서포트 
 
축구 유학의 경우 대부분의 1세대들은 나 홀로 유학을 떠나 ‘일단 부딪쳐보자’는 식이었다면 2세대들은 사전 준비에 보다 공을 들였다.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자녀와 함께 스페인 유학을 떠나는 40대 학부모는 “만 18세 미만의 학생이 홀로 유학을 떠나면 FIFA 규정에 따라 선수등록이 되지 않아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또 클럽 입단을 확정하지 않고 가서 시간을 허비하고 언어나 문화를 전혀 몰라 겉돌기도 했다”며 “때문에 요즘에는 부모가 함께 가거나 가족 전체가 함께 유학을 떠난다. 가서도 서두르지 않고 현지 적응시간을 보낸 뒤 입단 테스트를 보는 편이다. 하지만 부모가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우리도 독일에서 비자를 받지 못해 스페인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외교관·지상사직원이 아닌 부모가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직업을 가지거나 사업체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비자는 각종 보험료, 세금 등 경제적인 부담이 심해 평범한 가정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간혹 부모가 학생비자를 받고 입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자녀가 만 12세 이상이면 선수등록이 불가능하다. 

골프도 한차례 열풍이 지나가긴 했으나 매년 수백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으로 해외 유학을 떠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년 전 어머니와 함께 뉴질랜드로 떠난 위수빈 양(13)도 현지에서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수빈 양의 어머니는 “한국과 달리 운동에만 매진하는 게 아니라 매일 오후 3시까지는 정규교육도 받아 학력이나 영어 문제도 걱정할 게 없다.

좁은 연습장이 아닌 필드에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좋고 비용도 한국보다 저렴하다. 대회도 많아 실전 감각을 쌓을 수 있어 성장이 빠르다. 아이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기 유학이라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이들도 있다. 2년 동안 호주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골프를 지도했던 한 프로 골퍼는 “심하게 말해서 골프 조기 유학에 성공할 확률은 0.01%다. 골프 교육비가 저렴한 건 사실이나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지도자들 대부분이 프로 출신이 아닌 골프 교육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 라운딩을 자주 할 수 있다며 홍보하는데 비슷한 수준의 애들끼리 매일 쳐봤자 뭔 실력이 늘겠나. 내가 본 애들 모두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사춘기에 방황을 하거나 대학 입시 실패로 결국 한국에 돌아갔다”고 말했다. [박]

FC KHT webmaster@fckht.co.kr

<저작권자 © FC KHT 김희태축구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